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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7일 목요일

카지쿠리 회장님 성화를 보며

카지쿠리 회장님 성화를 보며

일본 신격화의 거두다.
신격화 없이는 미국도 한국도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헌금에 있어서만큼은...

그러나 이적기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노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항상 댓가가 따른다.
그 댓가를 치를 시한이 닥치기 전에 뜻을 이뤄야 한다.
특히 일본이 촉박하다. 헌금 나온다고 안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일본 정부가 주시하고 있다.
효용가치가 끝나면 곧 버튼을 누를 것이다.
일본은 놀라울 만큼 비합리적인 천황이 있지만 놀라울 만큼 합리적이다. 카지쿠리 회장처럼...

카지쿠리 회장의 육신이 영원할 수 없듯이 신격화도 영원할 수 없다.
이러한 신격화의 생명력은 이를 믿는 신도 수의 숫자에 철저히 의존한다.
그래서 전도를 부르짓는가?
그러나 신도 수는 하향세다. 헌금 실적 그래프도 이를 방증한다. 청평도 마찬가지이다.
기복신앙과 결탁한 신격화는 새로운 신도를 창출하여 그 꺽인 그래프를 다시 되돌려 세우기에는 애석하게도 역부족이다.

통일교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탈종교라는 시대정신이 가장 큰 원인이라 본다.
종교의 가장 큰 기능은 헌금도 아니고 화동회도 아니며 기복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인류가 갈구하는 신령과 진리에 영적인 빛을 비춰주는 것이다.
그 빛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희망을 얻고 화평함과 구원과 생명력을,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체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50년대와 60년대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역사는, 참아버님께서 이미 평양에서 체험하신 기성교의 한계를 넘고 날을 수 있는 새로운 신령과 진리를 제시하였기에 가능하였다.
잃어버린 기독교의 환경을 찾아 세우신 놀라운 역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 공동체에 이러한 신령과 진리를 불어 넣는 사명에는 역부족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신령과 진리에 어느 정도 심각한가?
기복신앙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천국에 가면 이미 내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니 대충 가면서 얼굴 비추다가 성화식에서 기도 받으면 필요충분조건이 완성되는 것인가?
종교의 테두리를 넘어 외연을 확장하고자 했던 그 무수한 시도와 실패들이 교차하는 십자로에서 아버님을 보내드리고 우리는 여전히 부족한 모습으로 남아져 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종교는 기복이라는 풍선을 타고 기적처럼 하늘을 날기 시작하지만, 곧 과학과 합리성이라는 기류를 만나 전복된다.
날아 올랐던 높이만큼 곤두박질치고 망신까지 보너스로 받아야 한다.
아버님의 메시아성을 앞에 세워 통일가의 종교성을 쌓고 이를 지키고자 하는 기득권은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그 성에 안주하고자 하는 것은 아버님 앞에 반역이며 패륜일 뿐만 아니라 메시아를 기다려온 인류 앞에 대죄를 짓는 것이다.
인류는 메시아의 본질을 스스로 깨우칠 수 없다.
때문에 인류를 깨우치는 중심인물은 섭리의 진척을 위해 자신을, 자신의 가족을, 자신의 종족과 사회를, 자신의 국가를 희생시켜서라도 세상을 향해 전진해왔다.
그 어느 지점에서 TURN하는 순간 그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한다.

1. 근대 민주정체의 한계와 자본주의의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
2. 김일성주체사상이 통일원리로 말미암아 더 높은 차원에서 새로이 해석되고 하나될 수 있는가?
3. 국제정치를 무정부체제로 인식하고 힘의 논리로 국제문제를 해결하려는 국제관행을 억제하고 이를 대체하는 패러다임을 제공할 수 있는가?
4. 과학의 몰심령성이 갖는 한계를 발견하고 이 한계가 내포한 심각한 문제를 제시하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할 수 있는가?
5. 종교와 과학이 유물론을 중심으로 통합되고 있는 현대철학의 거대한 움직임 앞에 통일원리가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이런 것은 모르는 일이라고?
나는 축복받고 헌금 열심히 하고 있으니 아버님 계시는 천국에 갈 것이므로 가방끈 길고 잘난 척 하는 너희들이나 지지고 볶고 하라고?
단언컨데, 우리는 이러한 과제 앞에 자아비판해야 하는 단상에 서야할 것이며 그 어떤 변명으로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음을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아버님에 대한 반역, 그것은 현재와 미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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