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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1일 수요일

불쌍한 자식에게 무리한 희생을 요구하는 부모는 악한 부모일 것이다...북한정권과 교회의 모습이 어찌 이리 같은지

2015.03.10. 22:11 http://cafe.daum.net/W-CARPKorea/cSkJ/25597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결정과 선택을 끊임없이 해야만 한다는 것과 같다.
어떤 결정이나 선택을 하기 위해서 조언도 받고 고민도 하며 자신의 결정이나 선택을 했던 사람들을 참고하기도 한다.
 
결정과 선택은 그 사람만의 특수한 경우도 있을 것이나 대부분은 이미 인새의 선배들이 겪은 과정을 자신도 따라가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대부분 이미 정형화된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보통이며 이런 것들에 대해서 글로서 작성된 문서는 아니지만 관행이나 도덕 윤리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행되어 왔던 소위 전통적인 방법을 따르게 된다.
 
그렇지만 그 관행이나 도덕율 등 이런 전통적인 방법들은 현재의 시점에서 맞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보편적인 것과는 다른 자신만의 특수한 사정들이 있기 때문에 그 전통적인 방법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
 
그래서 이런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한 것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워두면 고민의 시간을 줄일 수가 있을 것이다. 그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두 가지만 언급한다면
 
결정이나 선택의 결과가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가 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간단하게 선거를 예로 든다면 대통령 선거를 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선거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가장 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투표하는 것이다.
곧 최선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생각할 때 국가와 국민에게 이익을 가져오기 보다는 오히려 부담이 되는 후보들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중에서 국가에 부담을 가장 덜 줄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다.

순간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하여 그 상황에 맞는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행동지침을 마련해 두고 훈련을 한다.
군대나, 경찰 소방서 등등 이런 곳들에서는 이런 매뉴얼과 그런 훈련이 없으면 순간적인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그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업게 될 것이다.
 
위의 경우처럼 이런 경우에는 이런 선택과 결정을, 저런 경우에는 저런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이런 지침이 있다면 좋겠지만 자신의 삶에서의 결정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밖에 없다.
 
뭐 이런 당연한 내용을 가지고 왜 글을 올리는가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나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살아왔던 날들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부모를 봉양하는 문제나 교회에 충효의 도리를 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 현명한 결정을 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이다.
물론 이 글이 고깝고 화가 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상관하지 않겠다.
 
우리가 살면서 신중하게 결정을 해야 하고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물질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문제 때문에 고민스런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도 무한하고 물질도 무한하다면 선택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면 짜장면도 먹을 수가 있고 짬뽕도 먹을 수가 있는 돈도 있고 시간도 있다면 무엇을 먹을까를 가지고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할 때 선택의 고민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30대에서 50대에 있는 사람들의 고민들이 많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부모를 봉양(奉養)하는 문제일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다가 보니 80이나 90이 된 부모님들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불황의 시대이기 때문에 능력이 남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언제 생존을 위협받을지 모르는 처지에 내 몰리는 것이 현재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자신의 직계가족을 건사하기도 힘이 드는데 부모까지 봉양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사는 것이 힘겹다. 더구나 부모가 병보전이라도 하고 있다면 설상가상이 되는 셈이다.
전통적인 가치관에서는 부모를 편안하게 봉양하는 것이 맞지만 현실적으로는 부모를 모시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생존도 급급한 상태이니 마음뿐이다. 노부모가 있으면서 도시에 살고 있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가치관으로 본다면 부모 때문에 생겨난 자신이니 자신이 굶더라도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맞을 것이나 그런 가치관을 지금 이 시대에 강요한다는 것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여건상 강요할 수도 없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자신이 부모를 모시지 않고 요양원에 모시는 것은 불효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전통적인 가치관도 어쩔 수 없이 현실의 상황에 변해갈 수밖에 없게 된다.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키면서 살아가려고 하는데 현재 자신이 처해진 현실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동반자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우리 주변에서 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지금 시점에서 부모를 봉양하는 것에 대해서 근본적으로(원리적으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물질이 무한하다면 자신의 삶을 잠깐 유보하고 부모을 봉양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것이 유한하다면 부모를 봉양하는 것에 대해서 어떤 기준과 한계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기준과 한계를 설정하지 않으면 자신의 삶이 너무 많이 희생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부모를 통해서 태어나고 부모의 희생을 통해서 부모에게서 길리움을 받아서 성장하게 되고 자신도 부모가 되어 자신의 부모가 자신에게 그리 했던 것처럼 그도 자신의 자식에게 그렇게 하게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부모에게 잘하기 보다는 자식에게 잘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것이 비원리적인가 아니면 불효하는 행동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이런 것은
불효도 아니고 비원리적도 아니며 지극히 원리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부모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식을 위하는 것은 자식들이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그러하듯이 인간들도 본능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이다.
물질이 풍부하여 부모에게도 얼마든지 물질적인 지원이 가능하다면 모르지만 자식을 부양하는데도 부족하여 부모의 봉양과 자녀의 부양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부모의 부양보다는 자녀의 부양 그 물질은 자식을 부양하는 쪽으로 배분되어지는 것이 맞는 것이다.
 
물질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식만 부양한다면 그는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식을 부양하는데 투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난할 것도 양심에 거리낄 것도 없는 것이다.
부모에게 불효하고 싶은 자녀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세대는 자녀가 효도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게 되어 있다.
 
부모를 봉양할 수 있는 능력이 됨에도 불구하고 소홀한 자녀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자녀가 여건이 어려워서 자신과 자녀들의 미래까지 희생해 가면서 자신을 봉양하는 것에 대해서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그 부모는 비난 받아 마땅한 악한 부모이다.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통일교회에서는 충과 효를 강조하여 그것이 신앙생활의 제1의 덕목인 것처럼 요구하고 있다.
그리서 자신의 희생을 강요하고 자녀들의 미래까지도 희생을 강요하여 교회에 충과 효의 도리를 할 것을 강요한다.
 
지금 일본의 통일교인들에게 행하고 있는 헌금섭리라는 것을 보면 불쌍한 그들에게 본인과 그 자녀의 미래를 희생해서라도 헌금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행태이다.
부모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자녀의 앞길을 열어 주기를 원하는 것이 부모일 것이다.
지금 통일교회에서 일본교인들에게 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능력이 없는 자녀에게 무리한 효도를 요구를 하고 있는 악한 부모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희생시키고 자녀의 미래를 희생시켜가면서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현명한 부모는 그런 선택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대한 충과 효의 도리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자신과 자녀의 미래를 희생시켜가면서 교회에 충성하고 효도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또한 어리석은 사람이다. 정상적인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있는 교회라면 이런 강요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15.03.10. 23:37 new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오히려 희생을 강요하고 이를 당연히 생각하며 그것을 신앙이라고 세뇌하고 현혹하는 문화!
그러니까 이 땡일교가 정상이 아니라는 소리지요!!?
 
 
00:19 new
맞습니다. 오히려 부모가 희생하고도 희생했다는 생각조차 없어야 하는게 부모지요,
그런데 부모가 나는 너희들을위해 이러저러한 고생을 했다며 수십년 그걸 가지고 한말 또 하고 또 하고.. .
자식이 알아 주기를 바라고 희생을 강요 한다면 ...일반 부모라도 지겹지요 뭐....
 
03:57 new
그런 부모를 한때나마 절대시했었던 나 자신을 반성합니다.
우리가 인간을 절대시하면, 나사렛 예수를 절대시하는 기독교의 수준을 넘어설 수가 없고, 결국에는 성약섭리도 천일국섭리도 다 헛수고가 됩니다.
 
 
10:05 new
글 잘 읽었습니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자신을 다듬어 나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10:24 new
보통 부모들은 자녀에게 주기만 하지 빼았는 부모는 거의없다 그런데 통일교는 참부모라하면서 오직 빼았는 착취뿐이었다는 역사를가지고있다 그런데 죽었다고 헌금하고 100주년된다고 똥[돈]을빼았는 헌금이라 시정잡배 보다못한 부모가 참부모의 진면목인가???? 통일교의 신자들이 자기부모한데 이런 헌금 특히 돌아가신 부모한데 제사비용을 다 부담하면 안믿는 형제 자매 간에 존경받고 사회에 모범이되어 사회 윤리도덕에도 도움이 될것인데 ..지금까지 이런전도 몽상 이 신앙으로 둔갑하는 도깨비 귀신노름 에서 깨어나야 한다......

댓글 3개:

  1. 통일가 형제자매들이여!
    피를 팔아 헌금하는 자녀들을 바라보시는 참부모님은 어떤 심정이실까요?
    절대로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생하는 일본 식구들만 보지 마시고 본심이 기뻐하는 일본식구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님이 왜 일본식구들에게 목숨보다 더 귀한 돈을 헌금하라고 한 것입니까?
    조상구원이요 일본을 살리기 위한 조건물이 아닙니까?
    위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강요하고 있다는 것 저도 압니다.
    일본 지도자들이 아버님의 심정처럼 진정으로 헌금하는 식구들의 조상을 구원하고 본인도 구원 받고 일본을 위해 식구들에게 헌금을 강조한다면 미션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100% 그러한 기준은 아닐 수 있습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어머님께 잘 보이기 위한 행위라면 그 지도자는 참아버님이 가만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세레요한처럼 영계에 가면 제일 낮은 자리에 있지 않겟습니까.
    사실 저도 압니다. 전임자들의 발자취를 보면 촌지 등 용서할 수 없는 행위를 압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비리를 수면 위에 띄우게 하고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심판은 우리가 하는 것은 옯지 못합니다.
    더 큰 문제는 비리를 알면서도 간부가 어머님께 제대로 보고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비리일 것입니다.
    간신이 있으면 충신도 분명 있는 법입니다. 그 충신이 어머님께 제대로 보고할 날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형진님께서 이것이 제대로 안 되니까 독자노선을 걷고자 하신 것은 아닐까요???
    참자녀님들이 서로 하나 되시고 참자녀님들과 참어머님과 함께 하늘섭리를 이끌어 가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역시 자녀인 우리가 그런 부정부패한 지도자가 있다면 발본색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요...
    지도자이니까 대다수가 부정부패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식구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간식 때문 충신까지 욕보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흥분하면 안 됩니다. 이럴수록 자중하면서 자기가 모시고 있는 참자녀님 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우리는 언제나 하나의 생각,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참어머님과 참자녀님들이 함께 섭리를 이끌어 가실 수 있을까 만을 생각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들이 한마음만 되면 곧 그렇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저는 한치의 의심도 해본적이 없습니다.

    형제 여러분!
    어떤 참자녀님을 뜻 중심에 세우시는 것은 천지인 참부모님의 권한이기에 그 누구도 가타부타 평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회장 취임식을 보면서 축복가정으로서 마음이 무거운 것은 이취임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형진님도 참석하시고 현진님도 참석하셨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여러분!
    나중에 영계에 가서 참아버님 앞에서 저는 현진님을 위해 절대 충성했습니다. 저는 형진님을 위해 절대 충성했습니다. 저는 선진님을 위해 절대 충성했습니다. 라고 참아버님께 자랑할 수 있는지요? 참아버님께서 참 잘 했구나. 고맙구나 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니라는 것, 여러분이 더 잘 아시잖아요...
    참어머님께서 선진님 취임하실 때 누가 제일 생각나셨을까요? 당연히 참아버님이실 것입니다.
    현진님. 형진님이 없는 그 자리가 참아버님이 기뻐하셨겠습니까? 참어머님이 기뻐하셨겠습니까?
    슬피 우는 것보다 더 슬픈 것은 어쩔 수 없이 웃는 것입니다. 어머님의 심정을 단 한번만이라도 생각합시다. 누구보다도 슬프시고 힘드신 분이 참어머님이심을 잊지맙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이 못난 동생이 부탁합니다.

    하늘부모님!
    철없는 자식들을 보면서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고 계시옵나이까?
    피눈물을 흘리시면서 그러면 "안 된단다 형제간에 다투면 안 된단다" 수 천번 나무라시고 보듬아 주고자 하시면서도 자기만을 주장하는 사탄편에 서 있는 무지한 자식들(참자녀님을 평가하는 우리들)을 지켜바라 볼 수 밖에 없으신 하늘부모님! 저희들도 철부지한 이 형제들을 나무라지 않겠나이다. 탓하지 않겠나니다.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형제들을 향해 삿대질을 할 수 있겠나이까. 저희에겐 그럴만한 자격도 없고 입장도 아닙니다. 슬퍼하시는 하늘부모님과 참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참고 인내하며 형제들을 위해 기도할 뿐입니다. 철이 들 때까지 기도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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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옳은 말입니다.
    참부모님과 참자녀간의 이간은 안 됩니다. 그리고 참부모와 참자녀, 참 자녀간 서로 반목 대신, 서로 서로를 품어야 합니다. 선진님의 선임 세계회장을 찾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자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환경이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는 어찌해야 하나요?
    노여움의 혈기는 있어서는 안되지만 의의 혈기는 없어서는 안된다 했습니다.
    같이 부회뇌동하는 것보다는, 미래를 보고 때론 어려운 결단을 하는 것도, 하나님과 영계에 계신 아버님을 생각하고 온 인류를 생각하는 것일 것입니다. 개인의 목적이 아니라 보다 큰 전체를 위한 마음과 세상의 변화를 수용해 One World under God을 이루려면 말입니다.
    동시성섭리의 교훈을 보면, 2000년 동안의 변화가 지금은 문화, 경제, 정치 및 과학 및 통신 심지어 인간의 사고와 활동범주 등에서 불과 몇십년만에 바뀌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지식과 심정의 수준을 달리하고 높혀서, 원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섭리를 생각하는 방법은, 세상을 포용하기 위해 업그레이드 되야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득권세력이 뜻이란 이름하에, 모심이란 이름하에, 자신의 생존과 비원리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새술을 새 부대에 넣을 변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욥과 같은 시련이, '새 중심인물'에게 주어질 지도 모르고요.
    그런 입장에서 다툼이 아닌, 다른 방법의 변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아마 형진님의 방법은, 우리 식구들의 안일무사의 습관과 일부 최고위급 지도자의 오만함에 대한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단지 편가르고 비난이 아니라 화합과 대안을 바로 세운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일본식구의 50년이 넘는 참혹한 경제적 희생보다, 우리 전체의 기업체의 구조조정, 인적쇄신, 불필요한 낭비 축소, 지도자급의 과다한 인건비와 운영비 감축 등 합리화 방법이 더 절실하다고 여깁니다. 한 예로, 중심 간부들은 좌천되었다 또 다시 채용되고, 교회 요직은 전문가가 아니라 비 전문가인 목회자 출신이 차지하고, 효율적인 소통 경영보다 상명하복의 경영이 되고 있는 점을 본다면.....
    그러기에 이제 일본식구들의 단순 노동의 방법으로 경제활동해 비참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헌금을 하는, '경제복귀활동=헌금=가난한 빚쟁이 생활 =구원' 이라는 등식은 바꿀 때가 된 듯합니다.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심정은 이제 사람도 기뻐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하늘과 참부모님을 모시고 찬양할 때 더 즐거워하지 않을까요? 훈모님도 이제 하나님과 참부모님이 슬퍼하심보다 기뻐하심이 크다하셨고, 참아버님 승리과 천일국이 창건되었으니 이제 수준과 방법을 바꾸는 것도 타당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어느 교회도 절약이 잘 안되보이고, 헌금은 목회자와 운영비에 거의다 사용되고, 회개와 화합을 위한 기도나 방법 토론 등은 하지 않고 있으니, 그것이 심정인지? 느껴지질 않습니다. 1년에 1~2억이 나오는 교회들도 식구의 증가나 식구 심정의 증가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세계 식구의 동고동락의 심정, 심정권의 일체화가 이제 조금 필요할 듯합니다. 더 이상 목회자들이 식구보다 가난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식구는 많아도 지역별로 식구와 비교해 중간 수준 이하의 목회자는 없고, 능력은 식구보다 떨어져도 생활수준은 상급수준을 하면서 일방적인 목회자가 많습니다. 많아도 너무 많은 듯합니다. 일본 식구들을 한국교회에서 이제 해방시켜 주도록 합시다.
    한국 협회장님! 목회자들 급료, 연금, 복지, 사택, 운영비 사용 등이 전체 헌금의 과연 몇 %를 차지하나요? 재직회는 식구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예산을 알뜰하게 사용하나요? 경영합리화를 바랍니다. 머리숙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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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주교들에게 "군림 말고 섬겨라"
    한겨레 | 수정 2015.03.13 16:50

    김희중 대주교 "가난한 이들 위한 가난한 교회 될 것" 보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일(현지시각) 바티칸을 정기 방문중인 한국 주교들에게 "섬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교황은 이어 사제들에 대해 "안락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신자 위에 군림하는 경향도 있다. 착한 신부, 봉사하는 신부가 있다는 것도 안다. 한국 교회는 평신도로부터 시작됐고, 사제들은 한국 교회에 맨 마지막에 도착한 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어 "교회에서 (직위가) 올라간다는 것은 내려간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며 사제들이 겸손한 자세로 평신도와 교회에 봉사할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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