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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2일 화요일

섭리에 대한 이해(10)......섭리의 방법과 목적은 현실에 맞게 변해야 한다(쥐를 잡는데 고양이의 색깔은 필요가 없다.)

2015.05.09. 19:57 http://cafe.daum.net/W-CARPKorea/cSkJ/26048       

섭리에 대한 이해(10)......섭리의 목적과 방법은 바꾸어져야 한다.
 
 
섭리라는 단어가 종교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섭리의 최종적인 목적을 종교적인 측면에서 말한다면 사탄이 지배하는 이 땅을 하나님이 치리할 수 있는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결과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모든 인류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섭리의 최종의 목적은 이 땅에 살아가는 인류가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역사상에서는 통일교회가 추구하던 섭리를 이미 먼저 출발하였던 사람들과 나라들이 있었다.
그것은 국민들을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나라를 세웠던 소련과 중국(그 당시에는 중공으로 불렸던 중화인민 공화국)이다.
그들이 추구하던 국민들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목적은 우리의 섭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공산주의 이론에 입각해서 국가를 운영해 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공산주의를 수정하게 되고 결국은 공산주의를 버리기까지 하였다.
왜 그런 결과가 되었는가가 짐작이 가겠지만 공산주의의 경제이론이 결국 이론을 위한 이론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공산주의의 내용을 수정하게 되는데 소련이 먼저 공산주의를 수정하게 되자 중공이 소련의 변절을 비난하면서 중공과 소련이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중공은 공산주의 이론에 충실하게 공산주의 국가(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고 소련과 사이가 틀어진 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까지 대약진 운동을 몇 차례에 걸쳐서 시행했지만 결과적으로 수 천만 명이 굶어죽는 부작용만 일으키고 말았다.
그래서 중공도 소련처럼 수정공산주의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는데 또 거기에 반발한 것이 소위 문화대혁명으로 10여 년간 중국의 전통적 가치나 문화를 파괴하였던 사건이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70년대 등소평이 권력의 중심이 되면서 그 유명한 흑묘백묘론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쥐를 잡는데 검은 고양이면 어떻고 흰 고양이면 어떤가 쥐만 잡으면 되는 것이지 고양이의 색깔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하면서 중국이 미국과 수교를 시작하고 세계 여러나라들과 수교를 하면서 면서 소위 죽(竹)의 장막(帳幕)을 걷어 내면서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하게 되었다.
 
공산주의국가의 건설이 인민 곧 국민을 잘 살게 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국민만 잘살게 하면 되는 것이지 구태여 공산주의의 방법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것은 섭리라는 것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생각해기 위해서이다.
섭리라는 것이 공산주의국가의 건설의 목표처럼 인류가 다 잘 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인류가 잘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서 그 방법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지 하나님과 참부모님을 앞세워서 원죄와 속죄라는 종교의 깃발을 들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공산주의의 이론이 현실에서의 적용이 불가능한 소위 이론을 위한 이론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원리의 내용 또한 현실에서의 적용이 불가능한 이론들이 있다면 결국 소련이나 중국이 걸어갔던 그 길을 그대로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섭리를 앞세우고 출발했던 통일교회의 모습이 어떤 상황인가는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소위 공산주의의 교조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고 고집을 부리다가 쓰디 쓴 맛을 보았던 중국의 전철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나 아마도 지도부나 어느 누구도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통일교회가 사그러지는 불처럼(like a dying ember) 꺼져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 원인이 축복가정이나 지도자들 간에 서로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게 될 것이다.
섭리의 근본목적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중국의 초기 공산주의 혁명가들이 교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인민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던 것처럼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다.
 
지금도 섭리의 목표가 하나님에게 해방과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해서라거나 참부모님에게 영광과 참부모님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라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는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과 같은 것으로 목표가 전도(顚倒)된 것이다.
 
부모는 자식이 열심히 살아서 행복한 모습을 보면 같이 행복한 것이지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서 행복해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인류가 행복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면 그것이 곧 하나님에게 기쁜 일이요 메시아에게 기쁜 일이 되는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 통일교회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지 않으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아무리 하나님이 함께 하고 참부모님이 함께 하더라도 침몰하는 배의 구멍을 막을 생각도 하지 않고 배가 왜 침몰하고 있는지 원인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구할 수 있겠는가?
 
선장이나 선원들이 배가 가라앉는 줄도 모르고 있다면,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방법을 모른다면 그 배는 가라앉고 마는 것이며 그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 또한 그리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섭리의 목적은 인류 때문이며 목표도 인류의 행복이어야 한다.
그런 목표를 들고 세상으로 나가면 세상으로부터 얼마든지 환영을 받을 것이고 그들의 동참을 이끌어 낼 것이다.
그 방법의 일환이 소위 GPF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결국 섭리는 이런 방향으로 밖에 이끌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GPF 를 언급한 것은 그 단체와 관련이 있어서도 아니고 현진님을 특별히 지지해서도 아니며 그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급한 것뿐이다.
 
섭리를 종교의 입장에서만 생각한다면 어떠한 답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현진님은 GPF 활동을 계속 한다고 하더라도 통일교회와 절대로 연관을 시키지 않을 것이다.
종교는 이미 현대인들에게 종교 본래의 기능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영성의 개발이나 심정의 개발도 반드시 특정 종교를 통할 필요는 없다.
 
지금 이 카페의 회원들 중에도 살아가는 목적이 하나님과 참부모님을 위해서인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정신 줄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리고 종교적인 용어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보게 되는데 지금은 21세기이다.
그런 용어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섭리의 근본목적을 이해한다면 이렇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댓글 2개:

  1. 후계자 문제와 섭리의 방법과 목적은 완전 다르다오
    통일교 신도대책위원회(신대위)도 천정궁의 나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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