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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4일 화요일

메시아의 정체성에 대해서

2017.01.22. 23:41
누구나가 나라는 정채성에 대해서는 알고싶어하는 내면의 욕구가 자리하고 있다. 
즉,
내가 누구인가를 알고 싶은 것이다.
나는 누구로부터 왔으며, 무엇을 하며 살아야 나의 내면의 욕구가 충족되어질까에 대한 고민들이다.
나는 누구라고, 어떻게 정의하는 것이 좀 더 우아해 보일까?
인간의 가치는 무엇으로 정의해야 남들에 비해 돋보일 수 있을까?
종교적으로는 인간을 정의한다면
인간은 타락한 인간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인간을 
기독교에서 정의하기를 
타락한 인간,
본연의 궤도에서 이탈한,
하나님의 이상이나, 원리에는 전혀 관계가 없이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에 대한 정의인 것이다.  

본연의 궤도에서 이탈하였다면 본연의 인간은 도대체 어떠한 모습이었겟는가?
타락한 인간속에 내재하고 있는 본연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선의 향한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고 자신의 이기주의적 사고보다도 세상을 위하는, 타인을 위하는 희생적 사랑이 유출되는데 그러한 것은 인간이 타락을 하여 하나님과 관계없는 존재로 전락을 하였지만,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현 타락한 세계를 넘어 하나님의 세계를 향하는 본심의 발로기 나타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타락한 인간은 이러한 본심의 발로에 의하여 자신은 타락치 않은 본연의 인간이고 싶어하는 내적인 노력을 하는데 실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종교적 생활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존재하여 인간의 마음과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현실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종교가 추구하는 방향은 본연의 세계, 하늘의 세계, 천국의 세계이다. 즉 천국의 세계는 타락하지 않은 인류가 살아었야 했을 세계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종교인들은 그러한 본연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현실의 세계를 떠나, 육신을 벗어야만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
현실의 세계는 하나님이 이상하시는 천국의 세계와는 무관한 세계인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현실의 세계도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피조세계이기에 현실의 세계가 하나님과 관계없는 세계일 수는 없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답을 주고 있는 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타락한 인류에 있어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는
메시아를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앞에 돌아갈 길이 없다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신앙적 정의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첫째, 메시아를 만나야 하는 것이고, 
둘째, 중생의 역사를 통해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즉 다시 태어냐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생의 역사가 바로 성신의 역사이고, 다시 말하면 인류의 참어머님을 통한 다시 태어남이다.

그러기에,
인류를 구원해주는 측면에서 본다면
구원의 역사, 중생의 역사를 하는 성신은 참아머님은 메시아이며, 구세주인 것이다. 그래서, 타락한 인류에게 메시아를 맞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신의 역사를 통해 참어머님을 통해 다시금 거듭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타락한 인류는 스스로 메시아 앞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이 원리적 정의이기도 하다. 그것이 복귀원리에 있어서의 원칙이다. 

통일교에서 말하는 축복은 거듭남, 다시 태어남입니다.
2000년전에 율법학자인 유대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에게 어찌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물었을 때 예수님은 다시 태어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그 대당시에 예수님은 중생의 정의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하지시 않으셨다. 어찌하면 다시금 태어날 수 있는가의 질문에 예수님은 성령에 의해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거듭 말하지만,
거듭남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 중생이다,
다시 태어남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배속으로 들어가 다시 태어나야 하느냐는 질문은 이성적 질문이고, 이러한 현실적 질문에 합당한 답이 있어야만 현대인들에게 종교인들에 대한 믿음이 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가능할까?
진실로 태어난 인간이 어머니의 배속에 들어가 다시금 태어날 수 있을까?
예수님의 많은 말씀이 현실의 세계보다도 하나님이 세계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셨고, 영적인 내적인 내용으로 말씀을 하셨기에 다시 태어남의 의미도 현실적, 이성적 사고보다도 영적의 의미를 내적의 의미로 이해함이 신앙인으로서 적절할 것이다. 또한 예수님도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은 영적인 내용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금 태어나기 위해서는 타락한 인간을 낳아줄 어머니가 필요한 것이다.
어머니가 없이 태어난 존재는 없다.
그러기에 타락한 인간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중생을 시켜줄 어머니 역할을 해줄 존재를 만나야 하는데 기독교에서 이를 성신의 역사라고 한다. 성신의 역사는 감동과 감화로 예수님이 사랑을 체휼케하고 알게하는 역사라고 한다. 즉 성신을 통하여야만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을 체휼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예수님의 사랑을 체훌하는 것은 기독교의신앙의 세계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 예수님의 사랑을 체훌했다는 것은 믿음의 한 신앙적 증거이기도하다.
통일교회에서도 참아버님을 꿈에서 만났다늗가, 꿈에서 참아버님의 말씀을 들었고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면 내적인 신앙의 증거는 되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고 참아버님을 만나고 영적인 교류를 한 것은 예수님과 참아버님과 만남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과 참아버님과 일체가 되었다는 어떠한 조건, 증거인 셈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영적인 만남이 증거가 어떻게 실체화될 수 있을까?

그 실체화되는 과정이 거듭남의 과정이고, 중생이라고 한다.
영적인 일체감을 예수님과 참아버님과의 영적인 만남을 실체화시키고자 한다면 실체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을, 참아버님을 영적으로 만났다는 것은
예수님에게 접붙임을 받은 것으로 이해를 해야한다.
영적인 접붙임이다.
즉 영적인 생명의 씨을 받은 것이다.
즉 예수님과 일체를 이루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의 영적인 생명이 본연의 생명의 씨인 예수님, 참아버님에게 접붙임을 받아 구원을 받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생명의 씨를 받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의 씨로 거듭났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성장하여서, 완성의 체를 이루어서, 다음은 태어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예수님으로부터 참아버님의 본연의 생명체로부터 독립된 본연의 생명체로 탯줄을 끊고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하는 새생명체로서의 실체적인 개체로서의 구원의 역사가 참어머님이 하는 구원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 태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생명체가 태어나는 데에는 그 생명을 낳아줄 어머니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은 참아버님인 재림메시아의 복귀섭리를 완성시키기 위한 외적인 기반을 준비하는데 초점을 두다보니, 참아버님만이 구원의 역사를 하시는 메시아, 구세주라고 줄곧 생각을 해왔는데, 축복가정들은 축복에 있어서 구원의 역사로 실체적으로 낳아주는 어머님의 구세주의 사명을 축복이라는 감격 때문에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복귀섭리를 위해 헌신하고 노력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상, 나 자신이 새로운 생명체로 거듭나게 해주는 실체적인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신앙적 내용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영적인 사명의 역할을 하는 것이 성신의 역사이며, 통일교에서는 축복으로 참어머님께서 하나님의 생명을 축복가정에게 전수하는 내용으로 축복의 역사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로 열매맺어진 하나님의 생명이 실체적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참어머님이 낳아주는 역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거듭남의, 중생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것은 참어머니의 역할이다. 다시금 낳아주어야 하는 참어머니가 없으면 인류는 다시금 태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참어머님이 메시아, 구세주라는, 그리스도라는 근거가 있는 것이고, 메시아가, 구세주가 그리스도가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복수의 존재라는 것이다. 




17.01.23. 00:01 new
쓰벌 차라리 성주식을 한번 더 하라 그러소, 다시태어나긴 뭘 다시태어나
 
17.01.23. 06:03 new
성신은 메시아가 아니다. 타락하지않는 혈통을 가져오는 메시아의 씨를 가지고 성신의 뱃속을 통해 중생하는 것이다.메시아는 한분이고 메시아의 상대자가 메시아는 아니고 참부모의 위상을 갖는 복귀된 해와 입장에 세워진다.논리적인 논법으로 참어머님을 기어코 메시아 자리에 갖다 놓은들 진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참어머님은 참아버지와 함께하여 메시아의 가치를 공유하는것이고 독생녀의 개념으로는 독생자의 상대적 개념을 가장한 억지논리를 벗어나지못한다
 
17.01.23. 00:47 new
참아버님이 메시아로 오셔서 해와를 복귀하여 하나됨으로 참부모의 실체를 가졌고 중생의 역사를 시작하여 인류구원의 역사를 진행해왔다
메시아의 인류구원의 책임을 참부모님가정.참자녀가정과 축복가정들이 상속전수받아 메시아의 사명을 분담받고 책임을갖게 된다
 
17.01.23. 07:54 new
"성신의 역사는 감동과 감화로 예수님이 사랑을 체휼케하고 알게하는 역사라고 한다. 즉 성신을 통하여야만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을 체휼하는 것이?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느낄래야 독생녀에게는 느낄수있는 사랑이 없는 것 같다. 남편 깔아뭉개고 자식들 다 패개치고 섭리를 파탄내고 억지로 메시아가 되고 싶고 하나님이 되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모양이 차라리 안스럽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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