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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4일 토요일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문선명선생님의 남북통일과 세계평화의 방안

2017.10.13. 20:47
1. 한반도의 통일이 곧 세계의 통일
 
​16세 이후부터 평생을 세계평화를 위해 사신 문선명 천지인 참부모님

한반도는 세계정세의 축소판입니다한반도에서 피를 흘리면 세계가 피를 흘립니다한반도가 화해하면 세계가 화해를 하고 한반도가 통일되면 세계가 통일되는 겁니다그런데 1980년대 후반부터 북한은 핵보유 국가가 되려고 발버둥치고 있었습니다이에 대해 서방국가들은 선제공격이라도 하겠다고 을러대고 있었지요이렇게 극한으로만 치닫는다면 북한이 어떤 무리수를 둘지 몰랐습니다.나는 어떻게든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북한과 접촉했던 박보희에게 북한의 김달현 부총리는 북조선 인민들은 지금까지 문 총재를 국제적인 승공운동의 괴수로만 알고 있습니다그런데 어떻게 보수반공의 총수를 환영할 수 있겠습니까문총재의 방북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는 일입니다.”라고 단단히 못을 박았습니다그렇지만 박보희는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철저한 보수 반공주의자입니다그런 그가 중국을 방문해서 마오쩌둥 주석과 회담을 하고 미국과 중국의 국교가 정상화되었습니다여기에서 이익을 본 것은 중국이었습니다침략자로 낙인찍혔던 중국이 일약 세계무대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북한이 세계적인 공신력을 가지려면 문 총재와 같은 보수 반공주의자를친구로 만들어야 합니다.”라며 북한을 설득했습니다.

마침내 1991년 11월 30김일성 주석이 우리 부부를 초청했습니다당시 하와이에 머물던 우리는 급하게 베이징으로 날아갔습니다중국 정부가 내준 베이징공항의 귀빈실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북한 대표가 나타나 공식 초청문서를 내놓았습니다초청장에는 평양의 관인이 선명하게 찍혀있었습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통일교회의 문선명 선생과 영부인그리고 수행원 일행을 공화국에 초청합니다공화국은 재북 기간 중 그 신원을 보장하겠습니다.1991년 11월 30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무원 부총리 김달현.”

우리 일행은 김일성 주석이 보낸 조선민항특별기 JS215를 타고 평양으로 향했습니다어느 나라의 대통령에게도 김일성 주석이 특별기를 내어준 일은 없었으니 매우 이례적이고 특별한 대접이었습니다.

비행기는 황해 바다를 건너 신의주로 올라가서 고향인 정주 상공을 지나 평양으로 갔습니다고향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배려해준 것이었습니다저녁노을이 붉게 물든 고향을 내려다보는데 마음이 울렁거리고 폐부 깊숙한 곳이 저려왔습니다저게 정말 내 고향인가 싶어서 곧바로 뛰어내려산으로 들로 뛰어들고 싶었습니다.

평양 순안 공항에는 48년 전에 헤어진 가족들이 나와 있었습니다꽃처럼 어여쁘던 여동생들이 초로의 할머니가 되어내 손을 잡고 미간을 찌푸리며 울부짖었습니다일흔 살이 넘은 누님도 내 어깨를 붙잡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셨지만 나는 끝내 울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이러지들 마십시오가족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러 온 사람입니다이러지들 마시고 기운을 차리세요.”

40년 만에 만난 형제들을 껴안고 울지 못하는 내 마음은 속으로 폭포 같은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하지만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숙소로 향했습니다다음 날 평생의 습관대로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했습니다만일 영빈관에 감시시설이 있었다면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울부짖는 내 기도가 모두 녹음이 되었을 겁니다그날 우리는 평양 시내를 둘러보았습니다.평양은 주체사상의 붉은 표어로 완전히 무장되어있었습니다.

3일째 되던 날은 비행기를 타고 금강산 구경을 갔습니다구룡연폭포는 한겨울인데도 힘차게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금강산을 구석구석 돌아본 후 6일째 되던 날은 헬리콥터를 타고 고향으로 갔습니다꿈속에서도 그리워 한 걸음에 내달리던 그 집이 바로 내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꿈인가 생시인가 싶어 한참을 집 앞에 망부석처럼 서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본래는 안채와 사랑채그리고 창고와 축사가 서로 맞물린 사각형 집이었는데 다 없어지고 안채만 남아있었습니다.
내가 태어난 안방으로 들어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보았습니다어릴 적 기억들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안방과 부엌으로 통하는 작은 문을 열고 뒤뜰을 내다보니 예전에 내가 타고 놀던 밤나무는 이미 베어지고 없었습니다. “우리 쪼끔눈이배 안고프나?” 하고 어머니가 다정하게 나를 부르는 듯했습니다어머니의 무명 치맛자락이 휘익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고향에서 부모님의 묘소를 찾아 꽃을 바쳤습니다흥남감옥으로 나를 찾아오셔서 피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내가 본 그분의 마지막 모습입니다어머니의 무덤 위에 간밤에 내린 눈이 살포시 덮여있었습니다나는 흰 눈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고 어머니의 묘에 자란 뗏장을 한참이나 쓰다듬었습니다어머니의 거친 손등처럼 무덤 위의 겨울 잔디가 거칠거칠했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284-288)

2.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

1991년 김일성과 형제의 정을 맺는다

내가 본래 북한에 가려고 한 이유는 고향에 가고 싶어서도 아니고 금강산을 구경하고 싶어서도 아닙니다김일성 주석을 만나 조국의 장래를 놓고 담판을 지으러 간 것입니다그런데 엿새가 지나도록 김일성 주석을 만나게 해준다는 아무런 언질도 없었습니다그런데 고향을 둘러본 뒤 헬기를 타고 순안 공항으로 돌아오자 예고도 없이 김달현 부총리가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내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문 총재님을 영접하시겠다고 합니다그 장소가 흥남에 있는 마전 주석공관이기 때문에 지금 즉시 특별기를 타시고 흥남으로 가셔야겠습니다.” ‘주석 공관이 여러 개 있다고 하던데 하필이면 흥남일까?’ 가는 길에 내가 있던 흥남 질소비료 공장이라고 쓰인 커다란 간판을 보니예전에 감옥살이 하던 기억이 떠올라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나는 그곳 영빈관에서 하룻밤을 묵고 김일성 주석을 만나러 갔습니다.

마전 주석공관에 들어서자 김일성 주석이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얼싸안았습니다나는 철저한 반공주의자고 김 주석은 공산당의 우두머리지만 두 사람의 만남에 이념이나 신앙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우리는 오랫동안 헤어진 형제와도 같았습니다그것이 바로 피가 통하는 민족의 힘입니다.

나는 다짜고짜 김일성 주석에게 말했습니다. “김 주석의 따뜻한 배려로 가족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지금도 조국에는 생사조차 모른 채 나이 들어 죽어가는 1천만 명의 이산가족이 있습니다김 주석께서는 이산가족들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상봉의 은혜를 베풀어주십시오.”

나는 우리 고향을 둘러본 이야기를 덧붙이며 동족애에 호소했습니다고향 말이 술술 통하니 마음이 한결 편했습니다그러자 김 주석도 동감입니다내년부터는 북남의 헤어진 동포들이 서로 만나는 운동을 시작하십시다.”라고 봄눈 녹듯 대답했습니다.

고향 이야기로 말문을 연 나는 곧바로 핵무기에 관한 의견을 꺼냈습니다한반도의 비핵화선언에 합의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협정에 조인할 것을 정중하게 건의했습니다그랬더니 김 주석은 문 총재생각을 좀 해보시오.내가 누구를 죽이려고 핵폭탄을 만들겠습니까동족을 죽이려고요내가 그런 사람처럼 보입니까핵이 평화적인 목적에만 쓰여야 한다는 데 나도 동의합니다문 총재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으니 잘 될 겁니다.” 하고 신선하게 대답했습니다.

당시는 북한의 핵사찰 문제로 인해 남북관계가 좋지 않아 매우 조심스럽게 제안한 것이었는데흔쾌한 대답에 그 자리에 앉아있던 모든 사람이 크게 놀랄 정도였습니다말이 잘 통한 우리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이른 점심을 먹었습니다. “문 총재는 언 감자국수를 아십니까내가 백두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던 시절에 참 많이 먹었던 음식입니다드셔보시지요.” “알고 말구요우리 고향에서도 즐겨 먹던 음식입니다.” 하며내가 반갑게 말을 받았습니다

허허문 총재 고향에서는 별미로 만들어 드셨겠지요나는 살기 위해서 먹었습니다일본 경찰이 백두산 꼭대기까지 뒤지고 다니니 밥 한 술 젊잖게 먹을 수가 없었어요백두산 꼭대기에 감자 빼고 먹을 것이 뭐 있습니까감자를 끓여 먹으려다가 일본 경찰이 쫓아오면 감자를 땅 속에 묻어 놓고 달아났지요한참 지나 그곳에 돌아와 보면 어찌나 추운지 감자가 땅 속에서도 꽁꽁 얼어버렸어요할 수 없이 언 감자를 캐내서 녹인 다음에 가루를 내어 국수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주석님께서는 언 감자국수 전문가십니다.” “그렇지요이걸 콩국에 말아서 먹어도 맛있지만 깻국에 말아도 아주 맛이 좋습니다소화도 잘 되고 감자에 끈기가 있어 배도 부르지요그리고 문 총재언 감자국수는 이렇게 함경도식 갓김치를 얹어 드시는 게 별미외다한번 해보시지요.”

나는 김 주석이 권하는 대로 언 감자국수에 갓김치를 얹어 먹었습니다고소한 국수와 함께 매콤한 김치가 어우러져 속이 아주 후련했습니다. “세상에 산해진미도 많고 많지만 저는 그런 거 다 필요 없습니다.고향에서 먹던 감자송편이나 옥수수고구마보다 맛있는 게 없습니다.” “주석님과 나는 입맛까지 잘 통하는군요역시 고향 사람끼리 만나니 좋습니다.” 

고향을 둘러보니 어떻습디까?” “감회가 무량하지요제가 살던 집이 남아있어서 잠시 옛 생각을 하며 안방에 앉아보았습니다당장이라도 어머니가 이름을 부르실 것만 같아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어머니는 ?” “지난해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저런그러니 우리가 얼른 통일이 되어야 한단 말이지요제가 듣기로 문 총재는 상당한 개구쟁이였다 하던데 고향에 가셔서 좀 뛰어노셨습니까?”

김 주석의 말에 식탁에 앉았던 사람들이 와르르 웃었습니다. “나무도 타고 고기도 잡으러 가야 하는데 김 주석께서 기다리신다고 해서 서둘러 왔으니 다음에 다시 불러주셔야겠습니다.” “그러지요,그러고 말고요그런데 문 총재는 사냥을 하십니까나는 사냥을 아주 좋아합니다백두산에서 곰 사냥을 해보면 분명히 반할 겁니다곰이 덩치가 커서 미련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꾀쟁이에요한 번은 곰하고 딱 일대일로 맞닥뜨렸는데 말이지요곰이 글쎄 나를 보고는 꿈쩍도 않는 겁니다

곰을 피해 달아나면 어찌 되는 줄 아시지요그러니 제가 어떻게 했겠습니까나도 곰을 노려보면서 버텼지요한 시간두 시간시간이 자꾸 가는 데 곰은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지요백두산의 추위가 오죽 유명합니까곰에게 먹혀 죽기 전에 얼어 죽을 지경이었지요.” “아니 그래서 어찌 되셨습니까?” “하하문 총재 앞에 앉아있는 내가 곰입니까사람입니까그게 답입니다그려.”

내가 큰 소리로 웃자 김 주석은 느닷없이 문 총재다음에 오시거든 백두산에 사냥 한번 같이 가십시다.” 하고 말했습니다그래서 나도 얼른 김 주석께서는 낚시도 좋아하시지요알래스카 코디악 섬에 할리벳이라는 곰만큼 큰 넙치가 삽니다우리 그거 한번 낚으러 가십시다.” 하고 맞받아쳤습니다. “곰처럼 큰 넙치라고요그러면 당연히 가야지요.”

사냥이며 낚시며 우리는 취미가 서로 통했습니다그러자 갑자기 할 말이 너무 많아져서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가 서로 지난 이야기하는 것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우리들의 웃음소리가 식당 안을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나는 금강산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습니다. “금강산을 가보니 정말 명산이더군요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관광지로 크게 개발을 해야겠습니다.” “금강산은 통일조국의 자산입니다그래서 아무나 손을 대지 못하도록 했습니다잘못 개발해서 명산을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문 총재처럼 국제적인 안목을 지닌 분이 맡아서 개발을 해주신다면 믿을 수 있지요.”

김 주석은 즉석에서 금강산 개발 요청을 했습니다. “주석께서 나보다 연세가 많으시니 형님뻘 되시는군요.” 하자김 주석은 문 총재우리 이제부터 형님 동생하며 잘해 보십시다!”하며 내 손을 꽉 잡았습니다.

김 주석과 나는 손을 잡고 복도를 걸어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졌습니다나를 보내고 난 뒤 김 주석은 문 총재라는 사람 참 훌륭하다일생 동안 내가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배포도 크고 정이 넘치는 사람이다친밀함이 느껴지고 기분이 좋아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었다나중에 다시 만나보고 싶다내가 죽은 후에 남북 사이에 의논할 일이 생기면 반드시 문 총재를 찾아라.”하고 김 정일에게 신신당부했다니 서로 어지간히 잘 통한 모양입니다.

내가 일주일의 일정을 마치고 평양을 떠나자마자 연 형묵 총리를 수반으로 한 북한 대표단이 서울에 왔습니다연 총리는 한반도와 비핵화 공동선언에 조인했습니다그리고 이듬해 1월 30북한은 IAEA의 핵사찰협정에 조인함으로써 나와의 약속을 모두 지켰습니다목숨을 걸고 평양에 들어가 그만한 성과를 냈으니 참으로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289-295)

3. 땅은 나뉘어도 민족은 나뉠 수 없다

1991년 김일성과 쌓은 신뢰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한반도는 지구에 하나 남은 분단국가입니다우리에게는 한반도를 통일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두 동강이 난 조국을 이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한 민족이 둘로 나뉘어 서로의 부모형제를 만나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슬픔입니다남북을 나누는 38선이나 휴전선은 사람이 그은 것입니다땅은 그렇게 나눌 수 있지만 민족은 나눌 수 없습니다반백년이 넘게 나뉘어있으면서도 우리가 서로를 못 잊고 그리워하는 것은 하나의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합니다백의흰옷은 평화의 색입니다따라서 우리 민족은 평화의 민족입니다일제강점기 시절우리나라 사람중국사람일본사람이 만주나 시베리아 땅에서 서로를 죽이고 살고 하던 중에도 한국 사람은 몸에 칼을 지니고 다니지 않았습니다일본 사람과 중국 사람은 모두 칼을 가지고 다녔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싯돌을 품고 다녔습니다얼어붙은 만주와 시베리아 땅에서 불을 붙이는 것은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우리 민족이 그런 사람들입니다하늘을 공경하고 도의를 소중히 여기며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지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우리 민족은 참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하지만 나라가 통일되지 않았고 평화의 국권이 이루어지지도 않았습니다국토의 허리가 두 동강 나고 그나마 반 쪽은 공산주의의 어두운 세계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민족의 주권을 되찾으려면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지금처럼 남북이 갈라져서는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우리가 먼저 평화통일을 이루어 온전한 주권을 되찾아야만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한민족을 배달민족이라고 일컫듯 우리 민족은 세계에 평화를 전달하는 배달부로 태어난 것입니다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고 이름에는 저마다 타고난 뜻이 있습니다백의민족의 흰옷은 낮이나 밤이나 눈에 잘 뜨입니다어두운 밤중에 표식으로 삼을 수 있는 색깔은 흰색뿐입니다우리 민족은 밤이나 낮이나 세계평화를 전달하고 다니는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남과 북 사이에는 휴전선이 가로놓여있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우리가 휴전선을 제거하면 그 앞에는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더 큰 휴전선이 놓여있습니다우리 민족이 온전한 평화를 얻으려면 러시아와 중국이 가로막고 있는 휴전선까지 뛰어넘어야 합니다힘들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입니다.

나는 땀을 흘리고 피를 흘릴 때에 남김없이 몽땅 흘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마음속의 찌꺼기까지 몽땅 흘려 내보내야 미련이 남지 않고 깨끗이 정리됩니다고난도 마찬가집니다고난의 마지막까지 이겨내고 말끔히 청산해야만 고난이 끝납니다무엇이든지 완전히 청산하고 나면 다시 되돌아오는 법입니다그렇게 처절한 고통 없이는 민족의 온전한 주권을 되찾을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 다들 평화통일을 이야기하지만 내가 평화통일을 주장하던 때는 반공법과 국가 보안법이 무서워 감히 평화통일이란 말을 사용하기조차 겁나던 시절이었습니다나는 그때부터 줄곧 평화통일을 주장해왔습니다지금도 누가 어떻게 해야 한반도가 통일됩니까?” 하고 물으면 내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남한 사람이 남한보다 더 북한을 사랑하고북한 사람이 북한보다 더 남한을 사랑하면 오늘이라도 한반도는 통일이 됩니다.”

1991년에 목숨을 걸고 북한 땅에 들어가 김일성 주석을 만난 것도 모두 그런 사랑의 밑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그때 나는 김일성 주석과 남북 이산가족 상봉남북 경제협력,금강산 개발한반도 비핵화남북 정상회담 추진 등에 대해 합의했습니다반공주의자가 공산국가에 들어가 남북통일의 물꼬를 트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나는 김일성 주석을 만나기 전 평양의 만수대 국회의사당에서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주제로 두 시간에 걸쳐 강연을 펼쳤습니다그날 내가 북한 지도층을 상대로 힘주어 말한 것은 사랑에 의한 남북통일 방안입니다김일성주의로 무장된 북한의 지도층을 앉혀놓고 내식대로 말해버린 겁니다. “남북은 반드시 통일돼야 하는데 총칼로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남북통일은 무력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6·25전쟁도 실패했는데 또 무력으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일입니다.여러분이 주장하는 주체사상으로도 남북을 통일할 수 없습니다그럼 무엇으로 통일이 될까요?이 세상은 사람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절대로 인간의 힘만으로 어쩌지 못합니다전쟁과 같이 악한 경우에도 하나님은 섭리하십니다.

그러니 인간이 주체가 된 주체사상으로는 남북을 통일할 수 없습니다통일된 조국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주의로만 가능합니다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우리에게 통일의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통일은 우리 민족의 숙명이자 우리 시대에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우리 때에 조국통일의 성업을 이루지 못하면 영원히 조상과 후손들 앞에 머리를 들지 못할 것입니다하나님주의가 무엇입니까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남북을 통일하는 데는 좌익도 안 되고 우익도 안 됩니다그 두 가지 사상을 조화시킬 수 있는 두익사상頭翼思想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사랑의 길을 가려면 전 세계 앞에서 남침한 사실을 사과해야 합니다북한이 남한에 심어놓은 고정간첩이 2만 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그들에게 지금 당장 자수하라는 지령을 내리십시오그러면 내가 그들의 사상을 바로 잡는 교육을 하여 남북의 평화통일에 기여하는 애국자들로 만들겠습니다.”

나는 의사당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강력하게 이야기했습니다그러자 내 연설을 듣고 있던 북한 측의 윤기복 위원장과 김달현 부총리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습니다그런 발언이 내게 어떤 위험을 불러올지 모르지 않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습니다단순히 그들을 자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날 내 연설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에게 곧바로 보고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우리의 뜻을 전달하려 일부러 그렇게 말했습니다.

연설이 끝나자마자 수행원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습니다북한 사람들 중 몇몇은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할 수 있느냐고 정색을 하며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연설 내용이 너무 강해서 저들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하며 식구들이 걱정을 했습니다하지만 나는 단호히 말했습니다. “내가 여기를 왜 왔는가북한 땅을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다여기까지 와서 할 말을 안 하고 가면 천벌을 받는다설령 오늘 연설이 빌미가 되어 김 주석을 만나지 못하고 쫓겨난다 해도 할 말은 해야 한다.”

그 후 1994년 7월 8일 갑자기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습니다당시 남북관계는 최악의 국면이었습니다한국 땅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배치되고 미국에서는 영변의 핵시설을 파괴시키라는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금세라도 전쟁이 일어날 듯 상황이 급박했습니다북한은 일체의 외문 조문객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는 형제의 의를 맺었던 김 주석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박보희를 불렀습니다. “지금 바로 조문사절로 북한으로 가라.” “지금 북한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힘든 것은 안다하지만 무조건 들어가야 해.압록강을 헤엄쳐 건너서라도 반드시 들어가서 조문하고 와.”

박보희는 베이징으로 건너가서 목숨을 걸고 북한과 연락을 취했습니다그런데 김정일 위원장이문 총재의 조문사절은 예외로 하여 평양에 모시도록 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평양에 들어가 조문을 마친 박보희를 만난 김정일은 부친께서 문 총재님이 조국통일을 위해 애쓰고 계신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잘 오셨습니다.” 하고 정중하게 인사했습니다. 1994년 한반도는 언제 어디서 펑 하고 터질지 모르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바로 그때 김 주석과 맺은 인연 덕분에 한반도의 핵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때 조문은 단순한 예절에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김 주석과의 만남을 소상하게 소개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의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나는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그를 만났습니다그리고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는 내 신의가 통한 덕에 그의 사후에 아들인 김정일 위원장도 우리가 보낸 조문사절을 받아들인 것입니다.진실한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면 넘지 못할 벽이 없고 이루지 못할 꿈이 없습니다.

나는 북한을 내 고향내 형제의 집으로 여기고 찾아갔습니다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의 마음을 주려고 간 것입니다그리고 그 사랑의 힘이 김일성 주석을 넘어 김정일 위원장에게도 통했습니다그날 이후 지금까지 북한과 우리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지속되어 남북관계가 어려워질 때마다 힘을 다해 물꼬를 트는 역할을 맡아 하고 있습니다모든 것은 김일성 주석과 만나 진실한 마음을 통하며 신뢰를 쌓은 것이 그 뿌리입니다신뢰는 그렇게나 중요합니다.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온 후 우리는 북한에서 평화자동차공장을 비롯해보통강호텔세계평화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평양 시내에는 평화자동차 광고탑이 8개나 세워져 있습니다우리나라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북한 사람들은 평화자동차 공장을 보여주었습니다대통령과 함께 방북했던 재계 인사들은 보통강호텔에 묵었지요북한 땅에서 일하는 우리 식구들은 일요일마다 세계평화센터에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이런 일들은 남북의 평화적인 교류와 통일을 위한 평화활동들이지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한 사업이 아닙니다민족적인 사랑으로 남북통일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인 것입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296-302)

4. 총칼은 거두고 참된 사랑으로
우리 민족을 나눠놓은 것은 휴전선만이 아닙니다영남과 호남도 보이지 않는 선으로 나뉘어 있습니다또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은 거류민단과 조총련으로 나뉘어있습니다민단과 조총련을 대립하게 하는 이유는 부모의 고향이 달라서입니다그런데 부모의 고향이 어디인지 가본 적도 없는 2, 3세들까지 부모가 그어놓은 선 안에 웅크리고 삽니다민단과 조총련으로 나뉘어서 서로 말도 섞지 않고 학교도 다른 곳으로 다니며 결혼도 하지 않습니다.

2005년 나는 영호남과 재일 한국인들을 하나로 만들기 위한 그동안의 계획을 실천으로 옮겼습니다민단에서 1천 명조총련에서 1천 명의 동포를 서울로 초청해서 영남인 1천 명호남인 1천 명과 자매결연을 맺었습니다일본에서 조총련과 민단이 한 자리에 모여 남북의 평화통일을 논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어려운 일을 해낸 만큼 영호남민단과 조총련이 한자리에 앉아 서로를 포옹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감격스러웠습니다그때 서울을 처음 찾았던 조총련 간부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고향이 어딘지도 확실히 모른 채 냉전 구도의 대리전을 치르며 살아온 세월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하며 주저앉아 통곡했습니다그동안 부질없는 마음의 분단선을 긋고 살아온 것이 못내 부끄럽다고 했습니다.

한반도의 분단과 대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틀어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모든 사건에는 뿌리가 있는 법입니다한반도의 분단은 선과 악이 맞서 싸우는 선악 투쟁의 역사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북한을 돕기 위해 소련과 중공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이 총동원되었습니다.

남한도 마찬가지지요미국을 비롯한 16개 나라에서 군대를 파견했고 의료반을 파견한 나라가 5개국,전쟁 물자를 지원해준 나라가 20개국이나 됩니다세계 역사상 이렇게 많은 나라가 참전한 전쟁은 없습니다한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에 전 세계 인류가 동참한 것은 한국 전쟁이 공산주의 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의 대리전이기 때문입니다어찌 보면 우리나라가 세계의 대표가 되어 선과 악의 싸움을 치열하게 치러낸 것입니다.

워싱턴타임스를 창간한 지 10년째 되던 1992알렉산더 헤이그 미국 국무장관이 기념식에 참석해서 축사를 하던 중 뜻밖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입니다지휘관이었던 저는 흥남 공격을 맡아 목숨을 걸고 맹공격을 펼쳤습니다문 총재께서 공산당에게 잡혀 흥남감옥에 계시다가 그날의 공격으로 해방되셨다는 말씀을 듣고 감회가 남달랐습니다아마도 문 총재님을 구하려고 제가 그곳에 갔던 모양입니다
이제는 반대로 문 총재님께서 미국을 구하려고 이곳에 와계십니다.워싱턴타임스는 좌파 언론이 여론을 주도하는 워싱턴에서 균형 잡힌 역사관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일러주어 미국인의 생명을 구하는 신문입니다이번에도 확인했듯 역사에는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을 총지휘했던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자는 주장이 있었습니다만일 유엔군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남북이 지금처럼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요지였지요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놀랐습니다그런 주장은 북한 공산당의 입장에서만 할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희생을 치렀는데도 아직 한반도의 통일은 오지 않았습니다그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우리가 이미 통일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통일로 향해 가는 길목엔 장벽이 너무 많습니다첩첩이 막힌 장벽을 하나하나 허물며 나아가야 합니다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이 들어도 압록강을 헤엄쳐서 건너가는 정신으로 참고 견디면 통일은 반드시 옵니다.

동유럽 국가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까지 버티던 루마니아의 공산정권이 1989년 말 유혈 민중 봉기에 의해 무너졌습니다정권이 붕괴되자마자 24년 동안 루마니아를 통치했던 니콜라이 차우세스쿠는 그의 아내와 함께 처형되었지요그는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참하게 학살하던 잔인한 독재자였습니다어느 나라든지 독재가 점점 더 강화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정권을 잃을 경우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는 공포심 때문입니다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그렇게까지 막다른 길로 치닫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머지않은 미래에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통일을 이룰 것입니다따라서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경제인들은 경제인들대로 통일한국을 대비한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합니다나 역시 종교인으로서 북한 사람들을 사랑으로 끌어안고 함께 평화를 나눌 수 있는 통일 한국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나는 독일의 통일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왔습니다총 한 방 쏘지 않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면서 통일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당시 통일을 주도했던 사람들의 경험을 들으며 우리에게 적합한 방법을 찾습니다그 결과 독일이 평화 통일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동독의 권력자들에게 통일이 되더라도 생명이 위험하지 않다라는 믿음을 심어준 것이 주효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목숨이 보장되지 않았다면 동독의 통치자들이 그렇게 쉽게 통일의 문을 열어주지는 않았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북한의 통치자들에게 그러한 믿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얼마 전 일본에서 출판된 북한을 소재로 한 소설에서 차우세스쿠가 처형당하는 비디오를 수십 번씩 돌려 보며우리가 정권을 잃으면 저렇게 된다절대로 정권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절규하는 북한의 통치자들의 모습이 등장합니다물론 일본 소설가의 상상이지만 그들의 현실적인 고민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해결해주어야 통일이 빨리 옵니다.

한반도에 평화세계를 구축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합니다남한이 북한을 완전히 위할 때 북한은 싸움을 걸지 않고 한반도에 저절로 평화가 찾아옵니다불효자식을 감동시킬 수 있는 힘은 주먹도 아니고 권력도 아닌가슴에서 우러나는 사랑의 힘입니다북한에 쌀을 주고 비료를 주는 것보다 사랑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사랑하는 마음으로진정을 다해 북한을 사랑하고 위할 때만 북한도 마음을 연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303-307)

5.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쓰는 한반도

1991년 방북길에 북한내 일가친적을 만난다​

나는 고향이 그리워 꿈속에서도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입니다내 고향은 서울을 지나 저 멀리 산과 바다가 있는 북한 땅 정주입니다내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사랑과 생명이 있는 그곳에 닿아 있습니다우리는 모두 부모의 혈통을 받고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받아 먹고 자랐기에 그 사랑이 그대로 녹아있는 고향을 잊지 못합니다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더 고향이 그리워집니다그곳에서 출발했으니까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겁니다사람은 근본을 떠날 수 없습니다. 2004년 나는 34년간의 미국 활동을 마치고 천운이 함께하는 한반도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아침이 낮으로 바뀌는 시간을 알지 못합니다또 저녁이 언제 밤으로 넘어가는 지도 알지 못합니다어느 순간에 지나가버리는지 하늘의 일을 사람은 모릅니다우리 인생도 그러합니다성공과 실패의 순간들은 모두 우리 모르게 지나가버립니다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한 나라에 길흉이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습니다이렇듯 인간은 천운을 알지 못합니다천운이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며 우주가 돌아가는 원리입니다우리는 알지 못해도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섭리하는 천운이란 게 분명 있습니다.

우주는 그 나름의 질서에 딱 맞게 움직입니다이 세상의 모든 존재물들은 존재하기 이전부터 어떤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아기는 세상에 태어나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눈을 뜨고 숨을 쉽니다억지로 그렇게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 우주의 비밀을 푸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자연에는 저절로 되는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그러나 실제로 저절로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저절로 되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현상들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주의 방향성이 있습니다우주의 운천운이란 그런 것입니다우리가 미처 알지 못할 뿐 우주가 순환하는 과정에 큰 운이 닥치는 시기가 분명 있습니다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봄이 가면 여름이 오는 우주의 원리를 알면 우리나라에 닥칠 미래도 미리 내다볼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우주의 법도와 박자를 맞춥니다역사에 길이 남는 사람은 모두 우주의 법도와 박자를 맞춘 사람들입니다미국에 있을 때 집 앞의 허드슨 강에서 낚시를 많이 했습니다내가 어릴 적부터 고기 잡는 선수인데도 어느 날은 피라미 한 마리도 못 잡고 머쓱하게 돌아올 때가 있습니다.우리는 잘 모르지만 고기들도 지나가는 길과 때가 있습니다물이 있다고 항상 고기들이 지나가는 게 아니지요그걸 모르고 밤낮 낚싯대를 드리우고 기다려 봐야 헛수고입니다천운도 마찬가지입니다미래를 보는 눈이 없으면 천운이 내 눈 앞에 와있어도 보지 못합니다그래서 천운을 볼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한 겁니다.

세계문명의 방향은 줄곧 서진(西進하면서 발달해왔습니다즉 이집트의 대륙문명과 그리스·로마의 반도문명을 거쳐 영국의 도서문명이 발달했고다시 미국의 대륙문명으로 옮겨갔습니다문명은 계속 서진하여 태평양을 건너 일본으로 갔습니다그렇지만 인류문명의 이동이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일본을 크게 키워준 힘이 이제는 한반도로 옮겨오고 있습니다인류의 문명이 한반도에서 결실을 맺을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도서문명이 대륙과 연결되려면 반드시 반도를 거쳐야 합니다물론 아시아에는 인도차이나 반도도 있고 말레이 반도도 있지만그들 나라는 현대문명을 이어받을 만한 배경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오직 한반도우리나라만이 그 역할을 해낼 수 있습니다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참 절묘한 위치에 있습니다태평양 바다를 사이에 두고 미국과 일본을 대하고 있는가 하면아시아와 유럽대륙을 연하여 중국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예로부터 강대국들의 세력 다툼의 요지가 되어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냉전시대에는 공산주의와 목숨을 건 전쟁을 치렀고 지금도 한반도는 여전히 세계 강국들의 관심과 이해관계가 얽혀 분단국이 된 채 완전한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세계 4대 강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접점에 있는 한반도는 이제 강대국들의 충돌을 막아가면서 세계의 번영과 평화를 위한 협력을 이끌어내는 중대한 역할을 담당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천운에는 반드시 막중한 책임이 따릅니다이제 천운을 맞이한 한반도는 이들 나라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세계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도록 베어링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베어링은 회전하는 기계의 축을 일정한 위치에 고정하면서 동시에 축을 자유롭게 회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이제 우리 한반도가 바로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매끄럽게 유지하면서 세계평화를 발전시키는 베어링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그 역할을 위해 오래전부터 철저한 준비를 해왔습니다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정책을 지지하면서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서둘렀고덩샤오핑의 중국 개혁개방 정책을 1980년대 후반부터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엔볜대학에 공과대학 설립을 후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중국 땅에 발을 디딘 후톈안먼 사태로 중국에 투자하려던 외국자본들이 속속 중국을 떠나갈 때에도 우리는 중국에 남아 광둥성 후이저우에 수억 달러를 투자하여 중국의 개혁개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에서 한 일이 아닙니다나는 사업가가 아니라 종교인입니다종교인은 앞날을 내다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입니다러시아와 중국일본그리고 미국까지 한반도를 통해 서로 협력하고 발전해나가야 합니다한반도가 세계평화의 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개선을 위해 일하다가 보니 가장 기본적인 러시아어 사전중국어 사전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서로의 말도 모르면서 무슨 일을 함께 하겠습니까그때 앞날을 내다보는 뜻있는 교수들이 중한사전과 러한사전출간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고려대학교 민족문화 연구소의 홍일식 교수가 추진하던 중한대사전 프로젝트와 러시아학과 교수들이 준비하던 러한사전 출간사업이었습니다나는 이 두 사전 편찬을 지원해주었습니다.이 사전들이 지금까지 한중교류와 한러관계에 긴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높은 산꼭대기에 놓인 돌일지라도 떨어질 때는 골짜기로 떨어집니다서양문명의 끝이 바로 그러합니다과학의 힘을 빌려 눈부시게 발전했다고는 하나 정신적인 몰락으로 이미 골짜기를 향해 떨어지고 있습니다그 골짜기가 바로 수천 년 동안 정신문화를 쌓아온 동양입니다.

그중에서도 한반도는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만나는 장소요대륙문명과 해양문명이 만나는 곳입니다역사학자 슈펭글러는 일 년에 춘하추동이 있듯이 문명 또한 흥망성쇠를 되풀이해 왔다고 했습니다그렇습니다지금은 그동안 흥했던 대서양 문명시대가 지나가고 새롭게 환태평양 문명의 시대가 열리는 시점입니다환태평양 문화권의 중심은 아시아입니다한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가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됩니다전 세계 인류의 3분의 2가 아시아에 살고 있습니다세계 모든 종교가 발원한 곳도 아시아입니다아시아는 오랫동안 인류의 정신적인 근원이었습니다.

서양문명과 동양문명은 가까운 미래에 한반도에서 합쳐질 것입니다세상은 지금도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천운도 점점 더 빠르게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세상이 완전히 뒤집히는 변화의 시기에 한반도가 세계를 이끌 막중한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편견과 이기심으로 얼룩진 과거를 버리고 맑은 눈과 새로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시대를 맞이해야 합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3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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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13. 21:19 new
고향에서 부모님의 묘소를 찾아 꽃을 바쳤습니다.
흥남감옥으로 나를 찾아오셔서 피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내가 본 그분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17.10.13. 21:20 new
어머니의 무덤 위에 간밤에 내린 눈이 살포시 덮여있었습니다.
나는 흰 눈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고 어머니의 묘에 자란 뗏장을 한참이나 쓰다듬었습니다.
어머니의 거친 손등처럼 무덤 위의 겨울 잔디가 거칠거칠했습니다.
 
01:18 new
어느 작가의 필력인지는 모르겠지만 포장한번 눈물날정도 잘 쓰셨네요
 
17.10.13. 23:58 new
김일성 주석이 보낸 조선민항특별기 JS215를 타고 평양으로 향했습니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에게도 김일성 주석이 특별기를 내어준 일은 없었으니 매우 이례적이고 특별한 대접이었습니다.
┗ 13:06 new
그런데 지금은 그둘이 죽고 자식들이 손자가 꼴통이라는게 문제요..
 
02:17 new
참아버님의 노력의 결실을 지금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가 반성해봅니다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05:19 new
299페이지
남북을 통일하는 데는 좌익도 안되고 우익도 안 됩니다.그 두가지 사상을 조화시킬 수 있는
두익사상이 있습니다.
┗ 08:38 new
맞습니다
┗ 13:08 new
사상만 있으면 뭐하고 집안도 분열 시키고 종교 되는것을 세상이 다아는걸 ..ㅉㅉ
 
08:20 new
역시 섭리의 중심은 참아버님이셨네요.
참어머님은 내조하신 것이고요.
┗ 13:09 new
같이 아주 오랫동안 한이불 속에서 지낸분이 가짜 였다고 하던데 그말속에 진심이 느껴짐..
 
08:37 new
천운에는 반드시 막중한 책임이 따릅니다.
이제 천운을 맞이한 한반도는 이들 나라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세계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도록 베어링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 08:38 new
베어링은 회전하는 기계의 축을 일정한 위치에 고정하면서
동시에 축을 자유롭게 회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제 우리 한반도가 바로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매끄럽게 유지하면서
세계평화를 발전시키는 베어링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10:02 new
몇 조를 바치고 이루어진 김 일성과의 만남...
돈(재물) 바침없이 서로 인격적인 만남이었으면 올매나 좋았스까^^
┗ 13:11 new
일본 식구 거지 만들었고 조건만남으로 끝났고 둘이 저세상 사람이 되었으니...
 
16:37 new
그 역할을 위해 오래전부터 철저한 준비를 해왔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정책을 지지하면서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서둘렀고,
덩샤오핑의 중국 개혁개방 정책을 1980년대 후반부터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 16:37 new
엔볜대학에 공과대학 설립을 후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중국 땅에 발을 디딘 후,
톈안먼 사태로 중국에 투자하려던 외국자본들이 속속 중국을 떠나갈 때에도
우리는 중국에 남아 광둥성 후이저우에 수억 달러를 투자하여 중국의 개혁개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 16:57 new
결과는?
중국 정부는 현재 가정연합(통일교)를 사이비로 규정하고 있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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